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군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army.jpg|width=100%]]}}} || || '''{{{#FFF 코끼리를 타고 [[라호르|{{{#fff 라호르}}}]]로 입성하는 황제와 그를 뒤따르는 기병들.[* 뒤에 바드샤히 모스크가 보인다.]}}}''' || 무굴 제국군은 16세기에 처음으로 창설되었으며, 18세기 초에 가장 강대했다. 무굴 군대는 기본적으로 기동성이 좋은 기병 중심의 중앙아시아식의 군대였으며, [[악바르 대제]] 시기에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제국 군대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16세기 내내 명실상부한 인도 최강의 군대였다. 다만 타 국가들처럼 군의 지휘권이 황제에게 일원화되어있지가 않은게 큰 문제였다. '만사브'라고 불렸던 지방의 귀족들과 토후들이 스스로 모집한 군대를 끌고 올라와 황제 밑에서 종군하며 알아서 자신들의 군대를 지휘하는 방식이었기에 유럽이나 중국의 군대에 비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무굴의 상비군은 유일하게 황제 직속의 군대였으며, '아하디스'라고 불렸고 오직 황제의 측근들이나 친족들에게서만 뽑았으며 상당한 정예군이었다. 독자적인 규율과 지휘체계가 존재했으며 웬만한 엘리트 기병들보다도 봉급이 높아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하디스들은 보통 장교로 취급되어 행정 업무를 보면서 궁정이나 전장 사령부에만 머물렀고, 설사 실무를 본다고 해도 황제의 친위대나 궁정 경비대 등으로 주로 후방에서만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참고로 황제들은 이들에게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각기 개인용 말과 하인들을 부리게 해주었고 특권까지 주는 등 대우를 많이 해줬다. 그러나 무굴 제국은 상비군이 1억이 넘는 인구를 다스렸던 대제국치고는 그 수가 엄청나게 적은 편으로, 고작해봐야 수천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대규모 군대를 이끄는 원정을 할때에는 상비군이 아니라 지방의 토후들이 보내준 군사들을 동원해서 이들을 주력으로 삼고 전략을 짰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천밖에 안되는 상비군으로 지나칠 정도로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것은 말그대로 불가능했다. 따라서 악바르 재위기에 '만사브다르'라는 새로운 군사 정책을 도입하게 된다. '만사브다르'란 지방의 권력자들이 자발적으로 군대를 모집하여 황제가 있는 곳까지 올라와 황제의 밑에서 싸우게 한 방식으로, 그들의 계급은 모집해서 끌고온 군대, 그중에서도 특히 기병의 규모에 달려있었다. 최소 10명부터 장교의 지위를 하사받았으며 최대 5,000명까지 군대를 끌고 올라오는 것이 가능했다. 5,000명 이상의 군대를 가지고 올 경우에는 지나치게 목소리가 강해져 황제의 명령이 잘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아예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참고로 황제가 그나마 믿을만했던 친족과 왕자들은 각자 25,000명씩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 장교들은 기병과 말의 비율을 1:2 정도로 항상 맞추어놓아 언제나 말을 갈아탈 수 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고, 특히 아라비아 품종의 말들이 인기가 많았다. 또한 [[코끼리]]나 소, 낙타처럼 운송용 가축들도 항상 대기시켜놓았다고 한다. 참고로 병사들에게는 봉급을 은화로 받을 것인지 아니면 봉토를 하사받을 것인지 선택권이 주어졌다. 당시 제국의 산업에서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터라 보통 병사들의 과반수 이상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선택했다. 무굴 제국군은 크게 4개의 병종으로 나뉘었다. 최정예이자 핵심 병력이었던 기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주력인 보병, 뒤에서 군사들을 엄호하는 포병, 그리고 마지막이 해군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병종 별로 통일된 단위였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고, 기병은 기병별로, 보병은 보병대로 각자 군대를 지휘하는 만사브(지방 권력자)들에게 각자 분배되었다. 덕분에 만사브들은 자신의 부대 내에 모든 종류의 병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전략들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반대로 전체적으로 보면 군대가 기능별로 통합되지 못하고 와해될 수도 있다는 위험도 존재했다. 다만 오직 다루는 데에 많은 기술이 필요한 포병만은 예외였는데, 이들은 따로 부대를 만들어서 아예 하나의 사령관에게 맡겨버렸다. 전반적으로 군대의 핵심 전략은 포병이 대포로 적의 사기를 뒤흔든 다음, 기병이 달려가 혼란에 빠진 적들을 흩어놓고 보병들이 나머지들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아무래도 초대 황제인 [[바부르]]가 말을 중시했고 유목 생활이 강한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무굴 제국이다보니 기병이 가장 우대받는 경향은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cavalry.jpg|height=3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fuESMeWkAIa2tI.jpg|height=350]]}}} || || '''{{{#FFF 악바르 시기 무굴 제국의 기병. 무굴 군대는 군복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 '''{{{#FFF 황실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델리의 모스크로 향하는 [[악바르 2세|{{{#fff 악바르 2세}}}]]}}}''' || 특히 기병은 주로 귀족층이나 만사브들의 측근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보병이나 포병에 비해서 봉급도 더 좋았다. 당시 무굴 기병은 최소 2마리의 말과 1인의 시종을 데리고 다녔고 각기 부족을 상징하는 옷차림을 했다. 이덕에 무굴 군대의 군장이 통일되지 못했다고 한다. 주로 칼과 창, 방패를 들고 다녔고 가죽이나 사슬로 만든 갑옷을 입었다. 그 유명한 [[코끼리]] 부대도 기병에 속했는데, 코끼리가 다루기도 힘들고 비싸다보니 오직 장군 정도는 되어야 코끼리를 전장에서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이는 인도뿐만 아니라 코끼리 부대를 운용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코끼리들은 온몸에 쇠로 만든 칼날을 다는 등 중무장을 했고, 그 거대한 크기와 속도 때문에 데칸 지역의 저항 세력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또한 행군 중에는 무거운 짐을 끌거나 포를 운반하는 등 요긴하게 쓰였다. 그 외에 사막에서 온 부족들은 [[낙타]] 부대도 운용했다고 한다. 반면 보병들은 황제 직속군이 아닌 이상 대우가 영 좋지 못했다. 이들은 규율도 떨어졌으며 장비도 기병에 비해서 너덜너덜했다. 사용하는 무기도 총부터 활, 창, 검까지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구성원들도 용병들에서부터 시종과 예술가까지 지나치게 다원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보병은 기병과는 달리 보통 갑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사실상의 고기방패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보병에서 전력이 될 만한 것이 바로 '반두치크'라고 불리던 총병이었다. 수도 가장 많았으며 근접전을 대비해서 총 외에도 칼이나 창을 항시 구비하고 다녔다. 총병외에도 활을 쏘는 궁병들도 운용했다. 물론 기병에 비해서 어중이떠중이들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여서 목수나 솜 뽑는 사람, 청소부 등 온갖 직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사령관들도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대우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무굴 제국 시기 전쟁에 관한 기록들 중 이들에 대한 큰 언급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간혹 있다고 해도 큰 전과를 세운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보조해주던 것이 용병들과 전문 칼잡이들로 구성된 특수병종인 '샴셰르바즈'였다. 샴셰르바즈는 무장을 제대로 갖춘 중무장 보병이었으며 능력도 굉장히 뛰어나 보병들을 지휘하는 장교역을 맡았다. 일부는 황궁 경비를 맡거나 귀족들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 전투 능력 하나만큼은 무굴 군대 내에서도 인정받았다. 대략 1만 명 정도가 있었으며 전장에서는 포병이 성벽을 두들겨 파괴해놓으면 그 곳으로 달려가 저항하는 병사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핵심 임무였다. 참고로 대부분의 샴셰르바즈들은 [[수피즘]] 신도였다. 포병들은 전투 개전 직후 멀리서 적들을 두들겨서 사기를 꺾어놓는 역할을 맡았다. 나름 특수병종이었고 키우는 데에 돈도 많이 들어갔기에 대우가 보병보다는 좋았다. 다만 대포가 워낙 거대해서 코끼리들이 끌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기동성은 꽝이었고, 열악한 대포 기술 탓에 대포알 장전 도중 터져버리는 등 인명 사고도 굉장히 많았다. 주로 거대한 헤비캐논과 조그만 소형 대포들을 다루었는데, 헤비캐논은 지나치게 커서 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투 초반 몇 번 빼면 거의 쓸 데가 없었고 대신 말들도 끌 수 있는 소형 대포들을 중심으로 포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훨씬 우수한 대포를 가진 유럽 군대를 접하며 이들 역시 밀려나기 시작했고, 1700년대 중후반부터는 무굴 제국이 포병을 운용할 자금과 병력도 없었기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한편 무굴 해군은 4개의 병종들 중 최약체였고 주로 군수품을 운반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었으며 제대로 된 군함은 한 척도 없었다. 그나마 가끔씩 해적들을 단속한 게 주요 공적일 정도? 한편 4개의 병종들에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무굴 군사력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바로 '체라'라고 불렀던 노예 병사들이다. 주로 전쟁에 참가하는 상인들이 사들여 데리고 왔으며, 사기도 높지는 않았으며 실력은 주인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이들의 주 목표는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주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군사령관의 말보다 주인의 명령이 우선이었다. 기근에 시달리는 가정들에서 어린아이들을 싸게 사들인 상인들이 자비를 들여서 이들을 어릴 때부터 먹이고 재우며 훈련시킨, 일종의 사병이었으며 이들에게는 같은 처지의 노예들을 제외하면 집도 형제도 없는 처지였다. 절대다수가 힌두교도였으며 사령부에서는 체라들을 반쯤 소모품 취급했다. 전투력이 썩 그닥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앞장세우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훈련을 시킬 생각도 없었다. 대신 군수품 운송이나 막사 건설 등 막노동에나 간간히 써먹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